Miscellaneous (한 + Eng)

근래 읽은 글 중 가장 2

Author
chloebringsjoy
Date
2021-06-17 21:23
Views
55

2015년 커뮤니티 ‘메갈리아’의 이름은 이 소설 제목[이갈리아의 딸들]에서 비롯됐다. 현실이 반대라고 가정한 채 쏟아져나온 ‘우리’의 언어. “군대 가기 싫으면 안돼요 싫어요 했어야지.”라는 말은 “강간이 싫으면 안돼요 싫어요 했어야지”에서 나왔다. 전자가 온전한 시민권을 획득하는 통과 의례의 역할을 하기도 하는 반면 후자는 시민들의 사회에서 피해자를 주변으로 밀어낸다는 점에서 둘은 정확히 반대항으로 기능하기는 어렵지만, 이 두 표현은 모두 불평등한 구조에 기반해 ‘우리의 의지에 반하여’ 우리의 몸이 강제적인 방식으로 다뤄질 때 개인이 예의바르게 저항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점을 드러낸다. 남성중심 사회가 대부분 여성에게 일어나는 폭력인 강간을 사사로운 일로 치부한 현실이 이미 존재했기에, 그 자리에 징병제가 소환될 수 있었다. 그제서야, 한국 사회는 그야말로 난리가 났다. 다들 까먹은 것 같아서 하는 소리다.

이 다음의 기억이 처참했다. 이 시대의 마지막 가부장들이 《82년생 김지영》을 읽고 감화되는가 싶었지만, 정작 본인들이 쥐고 있는 권력을 한 톨도 내주지 않았다. 2018년 지방선거 더불어민주당 후보들의 얼굴이 대한민국 전국 지도를 둘러싼 인포 그래픽 형식으로 공개됐을 때의 충격을 아직도 기억한다. 이마가 드러나는 헤어스타일, 다소 번질거리는 피부 표현, ‘연륜’의 티가 나도록 주름살을 아주 지우지 않는 정도의 사진 보정, 이것은 그냥 ‘남성’이 아니다. ‘중년남성 직업정치인’ 젠더 표현을 적확하게 구현해 낸 고만고만한 얼굴들이 티브이 화면을 가득 메웠다. 이것은 상징적인 현상이었지만, 비단 정치계뿐인가?

그들은 젊은 여성들이 건져낸 페미니즘 안의 분열과 차이들에 주목하지 않았다. ‘어떤’ 페미니즘이 사회 보편의 정의를 더 나은 방향으로 견인해 나가는지 질문하고 탐구하지 않았다. 어떻게 대화의 장을 열고 누구에게 마이크를 쥐어주는 것이 생산적인 토론이 될지 고민하지 않았다. 대신 페미니즘에 싸잡아 재를 뿌리고 싫다고 말하는 ‘일부’를 소환해 ‘이것이 이십대 남성의 목소리’라고 말하며 자신들의 변화하지 않음을 방어했다.

문제는 어떤 논리에 동조하는가이다. 그들은 여성으로 국가가 분류한 인구의 절반이 정규 노동 시장에서 제대로 된 지분을 차지하지 못하도록 사회 구조가 짜여져 있는 것이 국가에 얼만큼의 손실을 내는지조차 말하지 않는다. 남성으로 지정된 자들이 왜 돌봄의 경험을 하고 돌보는 능력을 키워나갈 기회에서 박탈되어 젊은 날을 정규 노동 시장에서 모두 써버린 나머지 오십 대 일인 가구가 되었을 때 식생활마저 제대로 해나갈 수 없어서 지자체가 고용한 여성들이 그들의 도시락을 싸야만 하는 존재가 될 수밖에 없었는지 질문하지 않는다.

공정한 경쟁이라 했던가? 이 경쟁의 무대는 특정한 사람이 어느 순간에만 주목받고 성공하도록 짜여져 있다. 이 경쟁의 원리는 도박과 같아서 순식간에 미끄러진다. 분업, 외주, 효율을 맹신하는 사회는 한 사람을 평생에 걸친 통합된 존재로 살아가는 데 적극 반대한다. 어제의 사업가, 투자 성공자였던 가부장이 오늘의 알콜중독이 되어버리고 가정이 박살났다는 식의 서사를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이 구조를 바꾸지 않고 승리하는 사람만을 ‘나’로 바꿔치기 위해서 여성들마저 돌봄을 포기하고 있다. 노인과 장애인이 짐이 되는 사회, 아이마저 짐이 되는 사회, 자신이 쓸모가 없어졌다고 느끼면 가차없이 죽음을 택하는 사회. 그렇게 우리는 자멸하고 있다. ‘이준석’들의 입을 빌려 계속 이 똑같은 사회 구조 속에서 경쟁하게 하라. 제 손으로 아무도 돌보지 않고, 자기 자신을 돌볼 줄도 모르는 사람들로 사회가 채워질 것이다.

본인은 이렇게 불리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겠지만, ‘이대남’인 나의 식구는 “돈만 많이 주면 얼마든지 일하죠. 돈 싫어하는 사람이 어디있어요?”라는 직장 동료의 말에 “저는 식구들하고 정기 회의도 있고, 식사 당번도 돌아가면서 해요. 이거 해야 돼서 돈 많이 줘도 그런 건 싫어요.” 했다고 한다. 우리는 공존 중이다. 누가 우리 사이를 이간질하는가? 우리는 행복하고 싶다.

- 홍혜은님 Faceboo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