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scellaneous (한 + Eng)

공정성

Author
chloebringsjoy
Date
2019-10-12 23:05
Views
326
"사람들이 아이돌 오디션 프로그램을 옹호할 때 흔히 내세웠던 논리는, 그 포맷이 출발선의 불평등을 완화하는 순기능을 갖고 있다는 것이었다. 대형 기획사에 소속된 아이돌일수록 규모가 작은 군소 기획사 소속의 아이돌보다 더 많은 지원과 기회를 허락받는데, 아예 모든 경쟁 과정을 공개적으로 보여준다면 군소 기획사 소속의 연습생들 또한 보다 공정한 기회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애초에 방송사가 더 많은 가수에게 더 많은 무대와 출연 기회를 제공하면 되지 않느냐'는 문장 하나만으로도 무기력하게 무너질 이 조악한 논리에 많은 사람이 마음을 주었던 건, 그만큼 ‘공정한 경쟁’이라는 가치에 목마른 이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경찰 수사 결과 속속 밝혀지는 내용은 애초에 ‘공정한 경쟁’이라는 것 자체가 신기루였다는 사실을 폭로한다. 기회 자체를 적게 잡아 놓고 경쟁을 조장하는 것 자체가 문제이고, 그 과정을 다시 상품화해서 이윤을 추구한 자본의 기획이 사악한 것이며, 그것이 오늘날 한국의 ‘문화’가 되게 두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이 이렇게 만천하에 공개됐다.

나는 경찰 수사 결과에 따라 관련자들이 처벌받기를 바란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끝나도 괜찮은 걸까? 우리는 ‘데뷔’를 대가로 온갖 부조리와 인권침해로 가득한 경쟁을 견디라 말해온 오디션 프로그램 시대에 종언을 찍을 필요가 있다. ‘공정한 경쟁’이라는 신화를 거부하고 대신 ‘모두에게 보다 더 많은 기회’를 요구할 필요가 있다. 그것만이 또다른 이해인을 구하고 나아가 우리 자신을 구하는 길일 것이다."

이승한님, 한겨레, Oct 12, 2019.

'프듀' 의혹을 취재하는 PD수첩의 기획이 “불공정한 경쟁의 현장”이라고 이름 붙여졌다는 것만큼 우리 사회를 잘 보여주는 일화도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