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scellaneous (한 + Eng)

이창동

Author
chloebringsjoy
Date
2019-11-05 21:58
Views
600

(인터뷰 중)

-이른바 해피엔딩인가요?

=아니. 난 해피엔딩을 믿지 않아요. 해피엔딩은 존재하지 않는 말 같아요. 엔딩이 어딨어? 나는 이야기는 끝내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이야기는 관객/독자에게 하나의 구조로 다가가지만, 현실은 아니죠. 이야기가 해피엔딩이라고 현실이 해피엔딩이 되는 건 아니라고. 영화가 수면에 일렁이는 잔물결만한 영향이라도 관객에게 미치려면, 영화를 본 관객이 “그래, 두 사람 행복하게 살게 됐네, 축하한다!” 툭툭 털어버리고 극장을 나서서 자기 나름대로 걸어가는 방식이어선 안 된다고 생각해요. 적어도 나는, 그 방식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교통사고로 가족을 잃은 경험이 있으셨던 걸로 압니다. 단편소설 <불과 먼지>에 어렴풋이 묘사가 돼 있기도 합니다. 여쭙기 조심스럽지만, 그 일이 창작자로서의 길에 영향을 끼친 부분이 있나요?

=작가로서는 몰라도 인간으로서는 영향을 끼치게 되죠. 그런 경험에 한번 들어갔다 나오면- 나왔다고 생각하는데- 거의 모든 면에서 달라져요. 가슴에 묻는다는 건 그냥 수사가 아니라서 가슴의 통증이 1년 남짓 계속됐어요. 가끔 사람들이 위로를 하면 그 말도 듣기 싫거니와 그 사람이 굉장히 미웠어요. 그런데 어느 날 수술로 아이를 잃은 학부형이 와서 “선생님, 우리가 어쩌다가 한배를 탔네요” 하더라고. 그 말은 완전한 공감이 됐어요. 굳이 말하면 그 배는, 저주받은 사람들이 타는 배겠죠. 그 소설을 썼을 때는 뭔가 남겨놓아야 하겠다는 생각이었어요. 흔적이 없다는 게 제일 견디기 어려웠거든. 사람의 죽음에는 남이 기억하고 이야기하는 죽음이 있어요. 예를 들어 5·18의 죽음이 그렇죠. 하지만 어떤 죽음은 아무도 말하지 않아요. 놀랍지 않아요? 나는 놀라웠어요. 인간의 삶이 그럴 수 있다는 것이.

-감독님 작품들이 지닌 또 하나의 공통점은 불운한 사람들에 관한 관심입니다. 불행과 불운은 좀 다를 텐데요.

=다르죠. 행복감은 학습되는 거예요. 나는 행복에 대해 학습이 안 돼 있어요. 한국인이 대개 행복을 학습 못하고 살아가죠. 여론조사를 하면 OECD 국가 중 불행지수가 제일 높잖아요. 서양인들은 밥 먹고 나서도 “Are you happy?”를 물을 만큼 행복이란 말을 친숙하게 쓰지만 우리에게 행복은 내가 쉽게 손잡을 수 없는 무엇이지요.

김혜리, 끈질긴 이야기꾼의 도돌이표, 영화감독 이창동, 씨네21, Mar 19,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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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젯밤, 대학원 친구가 선물해 준 크림슨 펀치 향의 차를 우리며 <관객모독>을 읽었다. 크림슨 펀치는, 이름에 걸맞게, 아주 새빨간 색을 띠고 있었고 대단히 시큼했다. 환상을 주입하지 않고, 우리가 입 밖으로 내뱉는 말만을 휘갈겨 극 위에 서게 만들고, 기존의 모든 문법을 거부하는 이야기를 쓰는 것이 한트케의 욕망이었다. 첫 학기 "기존 연구에서 괄시되었던, '인간'을 깊이 파고 드는 학문을 하고 싶다"던 나의 문장은 어느새 다소 밋밋해진 인상으로만 남아있고, 여전히 세상은 바쁘게 돌아가는 듯 하다. 상대를 진실하게 마주한다면 거짓말을 할 수 없다. 나는 나의 배움과 얼마나 솔직하게 대면하고 있나? 가장 최근, 내 주변과 불화해본 적이 언제였던가? 아무쪼록 이 재미없는 하루들이 얼른 마무리되고, 책과 논문에만 파묻히고 싶다는 생각이다. 그런 오만한 생각들을 하다가, 차가 식었다.